불멸의 삶이 묻는 우리의 존재 가치: 봉준호의 '미키 17'이 던지는 질문

봄이 시작되는 3월, 바람은 여전히 차갑지만 햇살은 점점 따뜻해진다. 극장 안으로 들어서니 스크린이 천천히 어둠에 물들었고,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 17이 시작되었다. 그의 영화는 언제나 인간에 대한 깊은 탐구를 담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죽음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영화는 미키라는 한 인간이 죽음을 맞이하고 다시 태어나기를 반복하는 이야기다. '복제인간'이라는 설정은 그 자체로 과학적 상상력을 자극하지만, 내가 영화 내내 집착했던 것은 인간이 과연 죽음을 몇 번이나 겪고도 똑같은 존재로 남아있을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었다. 기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죽음을 반복한다면, 과연 죽음은 여전히 공포의 대상일까? 혹은 의미가 퇴색되어 가는 과정일까?
우리는 흔히 '삶은 유한하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죽음이라는 끝이 있기에 우리는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이들과의 시간을 아끼며,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하지만 미키처럼 계속해서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면, 우리는 여전히 삶을 소중하게 여길까? 아니면 그 소중함조차 퇴색되어 버릴까?
영화 속 미키는 처음에는 자신의 죽음에 두려움을 느끼지만, 점차 그것이 일상처럼 되어간다. 죽음이 더 이상 절대적인 끝이 아니라면, 생을 대하는 태도는 어떻게 변할까? "내가 몇 번째 죽은 거지?" 미키는 자신의 또 다른 존재를 마주하며 중얼거린다. 그 순간, 죽음이 단순한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 더욱 확실해진다.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끝이라는 개념 때문인지, 아니면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본능적 공포 때문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영화를 보며 문득,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리는 언젠가 죽을 것이기 때문에 더 치열하게, 더 의미 있게 살아가려고 한다. 하지만 죽음을 넘어 다시 태어나는 것이 가능하다면, 과연 우리는 지금처럼 사랑하고, 아파하고, 무언가를 간절히 갈망할 수 있을까? 영원한 생명은 축복일까, 아니면 저주일까?
헤밍웨이는 "모든 진정한 이야기는 죽음으로 끝난다"고 말했다.
죽음이라는 종착점이 없다면, 인간의 이야기는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영원히 살아간다는 것은 마치 책의 마지막 페이지가 없는 이야기를 읽는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끝없는 여정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봉준호 감독은 이런 철학적 질문을 서늘한 감성으로 던진다. 그의 영화 속 인물들은 단순한 스토리의 도구가 아니다. 미키의 시선과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인간이라는 존재가 무엇인지, 우리가 왜 삶을 붙들고 있는지에 대한 깊은 사색에 빠지게 된다. 영화의 한 장면에서 미키는 자신의 또 다른 버전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이 고유한 존재인지, 아니면 단순히 복제된 기억의 집합체인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된다. 이는 마치 우리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던지는 질문과도 닮아 있다. 나는 내 기억과 경험의 총합인가, 아니면 그 이상의 무엇인가?
하지만 나는 또 하나의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미키 17이 봉준호 감독이 아닌, 예를 들어 크리스토퍼 놀란이나 드니 빌뇌브 같은 서구권 감독의 작품이었다면 과연 반응이 달랐을까?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 이후 할리우드에서 강력한 입지를 다졌지만, 여전히 '한국 감독'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평가받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미키 17이 서구 감독의 손에서 나왔다면, 더욱 더 극찬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건 단순한 아쉬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감독의 국적을 넘어 그 작품 자체로 평가할 수 있는가 하는 고민이 스쳤다.
죽음과 삶, 그리고 그 경계를 넘나드는 미키의 이야기 속에서, 나는 결국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유한하기에 아름답고, 우리는 끝을 알기에 최선을 다한다. 그렇다면 그 끝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갈 것인가? 죽음이라는 종착점이 없다면, 삶이라는 여정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네가 죽어도, 난 계속 살아 있어. 그리고 난 네 기억을 다 알고 있어."
영화 속 미키의 또 다른 버전이 던지는 이 말은, 마치 죽음이 더 이상 인간을 정의하지 않는다는 선언처럼 들렸다. 이는 우리에게 물음을 던진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유한성이 우리의 본질적인 조건이라면, 그것이 제거된 존재는 여전히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을 '죽음을 향한 존재'로 정의했다.
우리는 항상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그것이 우리의 실존을 규정한다고 말했다. 미키의 경우처럼 죽음이 단순한 통과의례가 된다면, 우리의 실존적 조건은 어떻게 변할까? 이는 단순한 사고실험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성격에 대한 물음이다.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서는 길, 여전히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하지만 그 바람은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사라질 존재들이지만, 그렇기에 이 순간이 더욱 소중하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삶을 사랑하는 이유가 아닐까, 하고.
이 영화를 통해 다시금 깨달았다. 인간의 본질적인 두려움이자 끝없는 질문인 '죽음'에 대해 고민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넘어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생각. 봉준호 감독은 단순한 SF 장르의 틀을 넘어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물음을 던지며, 한 번 보고 끝내는 영화가 아닌 오랫동안 곱씹고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을 만들어냈다.
미키의 반복되는 죽음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그리고 삶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과연 영원한 시간 앞에서도 변하지 않을까?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이지만, 적어도 나는 이 영화가 나에게 준 고민의 깊이를 소중히 간직할 것이다.
물 한 방울이 바다로 돌아가듯, 우리는 모두 언젠가 대자연의 품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미키처럼 죽음과 삶의 경계를 반복해서 넘나든다면, 과연 우리는 어디로 돌아가는 것일까?
봉준호 감독은 그 질문을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심어두고 떠난다. 밤하늘의 별빛처럼, 잠시 빛나다 사라지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라면, 그 짧은 순간을 어떻게 빛낼 것인가? 미키 17은 그 질문 앞에 우리를 홀로 서게 만든다.
'이거어때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는 연결되었을까, 아니면 감시당하고 있을까 : 소셜 딜레마 (1) | 2025.03.19 |
---|---|
허리케인 카터: 억울한 투옥과 인간의 의지 (0) | 2025.03.18 |
자정의 파리, 그 마법 같은 순간을 찾아서 영화 미드나잇인파리 (0) | 2025.03.17 |
3월 추천 여행 1박2일 : 벚꽃 흩날리는 고도에서 경주 (0) | 2025.03.14 |
파도를 따라, 마음을 따라: 동해선으로 떠나는 울진 죽변 당일 여행 (0) | 2025.03.11 |